템플스테이 3일차 - 소름 끼치는 경험을 한 해인사에서의 마지막 날, 그리고 해인사 팔만대장경(+템플스테이 후기)
l T r a v e l l
소름끼치는 경험을 한 해인사에서의 마지막 날, 그리고 팔만대장경
템플스테이 후기
글 / 사진 또니 (https://suninkorea.com)
▼▼▼템플스테이 2일차 가야산 소리길 걷기▼▼▼
# 또다시 새벽
또다시 새벽이다.
전날 밤 옆방 사람의 코골이로 잠을 설쳐 굉장히 힘들었다. 졸린 눈 비벼 뜨고 새벽 예불을 드리러 법당으로 향했다. 이게 웬일. 나까지 합해서 총 3명이다. 거기다 2명은 외국인... 왜 다들 안일어 나세여? 거기다 외국인 2명은 새벽 예불을 안드려서 오늘 새벽 예불은 나의 독차지. 옆에 앉아 계신 어머니께서 법구경(?)도 갖다 주시면서 총애를 한몸에 받았다. 산책 조금 하고 아침 공양을 드리러 슝슝! 떡국이네. 떡국 색이 너무 진했기 때문에 왠지 버섯 맛이 굉장히 강할 것 같아서 김가루를 미친듯이 들이 부었다. 굿초이스! 아이고 짭아라... 굉장히 짰지만 버섯 특유의 향을 맡기 보다는 짠게 나았다...
# 사명대사 탑비
기가 센 편인지, 아니면 귀기랑은 맞지 않는 건진 모르겠지만 그런 비슷한 경험을 한 적도, 본 적도 없었다.
기껏해야 가위 눌림 정도 였는데 그것도 딱 두번. 몸이 굉장히 피곤했던 시절 새벽 6시, 7시 타임 이렇게 두시간을 내리 수영하고 조금 자고 밥먹고 학원에 출근해서 밤 11시까지 일하고 회식하면 새벽 3~4시에 귀가했던 시절이었다. 피곤할만도 하지... 그때도 귀신의 형체는 본적도 없었다. 신기해서 동네방네 자랑한 기억밖엔... 여튼 그정도로 초자연적인 체험은 해보지 않았었는데, 이번에 사명대사 탑비에 방문하고 아주 소름끼치는 경험을 했다. 아침 먹고 이른 새벽 산책하다가 용담 선원 옆에 사명대사 탑비가 있다길래 호국불교의 기운을 받고자 씩씩하게 카메라를 들고 향했다.
조그마한 암자도 구경하고 다른 분의 탑비도 구경하고 이제 드디어 사명대사 탑비가 있는 곳에 발을 디뎠는데...
처음엔 뭔가 오싹하다기 보다 그냥 소름이 끼쳤다. 괴기스럽다기 보다는 그냥 조금 이질감이 드는 정도? 흰색 배경에 왕생극락이라는 글이 쓰여진 연등이 바람에 휘날리는데 갑자기 무서운 기운이 느껴졌다. 그 순간 머리 위에서 까마귀들이 울면서 모여들기 시작했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닭살이 돋아 올랐다.
위 사진처럼 이렇게 직선으로 놓여 있는 구조다.
특히 중간에 있는 사명대사 석장비 앞에 서면... 마음이 참 아프면서도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조선의 기를 꺾어 놓겠다고 사명대사 비를 저렇게 네조각으로 갈랐다. 일본노무 쉐끼들... 뒤질려고 진짜... 그때 내 머리와 제일 가까운 가지에 까마귀가 내려 앉아 "까악~ 까악~"이 아니라 "악악악악!!!!!" 울부 짖듯이 울기 시작했다. 아까 돋았던 소름이 가라앉지 않았다. 새벽이라 추워서 그런가 팔을 감싸 안고 손바닥으로 비벼 댔지만 역부족이었다. 석장비 뒤쪽도 궁금해서 뺑~ 둘러 뒤쪽으로 갔지만 뒷면을 정면으로 보지도 못하고 반쯤 가다 도망쳐 나왔다. 무서웠다.
사명대사가 계셨다는 홍제암.
여기로 쫓기듯 대피했지만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더 무서워졌다. 그길로 빤스런... 그제야 소름이 풀렸다. 정말 무서웠지만 친구들과 이 경험을 공유하고자 점심 먹기 직전 대낮에 한번 더 방문했다.
# 해인사 장경판전
부산에서 멀고도 먼 해인사에서의 템플스테이를 선택한 절대적인 EU, 해인사 장경판전!
원래 8월 10일부터 약 11일간 일본 도쿄의 여행이 예정되어 있었다. 한국사를 무지 사랑하는 사람인지라 지금까지 일본으로의 여행은 한번도 가지 않았고, 꼭 가야 했던, 학부생 때 일본관광연구 수업의 일환으로 후쿠오카 대학교에 가서 과제 발표를 하는 비즈니스성(?) 일본 방문 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도쿄 여행을 결심했던 이유는 애정해 마지 않는 나의 알코올 메이트가 지금 도쿄에 살면서 공부를 하고 있다. 같이 초밥에 생맥주를 박살내고 올 계획이었는데, 일본의 화이트 리스트 사태, 아베의 막말 등 뒷목 잡게 하는 요소들이 너무 많아 10만원의 수수료를 감안하고 그냥 취소해 버렸다. 내 알코올 메이트는 굉장히 아쉬워했지만 평소 유니클로도 안 사입는 나를 알기에 "언니답네."라는 말 한마디와 함께 언젠간 보기로 약속- 그리고 퇴사를 했고, 템플스테이 예약을 하면서 해인사에 마음을 뺏겨 버렸다. 특히 호국불교의 대표격인 팔만대장경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제일 큰 이유였다.
해인사 장경판전은 해인사 중에서 가장 높이 위치해 있다.
대적광전(해인사 대웅전) 뒤편에 장경판전으로 향하는 가파른 계단이 있다.
사방으로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다.
처음에 딱 들어 섰을 때 약간 짭쪼름한 냄새가 났다. 설명을 듣고 나니 이게 보관하기 위해 여러가지 과학 시설의 일부란 것을 알았다.
사실 특별한 건 없다.
가까이서 보지도 못하고 펴보지도 못한다. 하지만 고려시대 몽골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켜내려는 간절함을 알아서 일까, 장경판전에 발걸음을 해서 팔만대장경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힘을 얻는 듯 했다. 세계에서 가장 완벽하고 정확한 불교 경전이기 때문에 외국에서도 불교의 순례지로 손꼽히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늘 하고 있었던 일본 불매운동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힘을 주쎄욤!!!
EPI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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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은 너무나 바쁘다.
쉴틈 없이 울려대는 카톡, 연예인들의 쓸데없는 일상과 사생활, 정치인들의 지긋지긋한 부정부패, 그리고 엄마친구 아들의 소식까지... 굳이 알고 싶지 않은 것들도 너무나 쉽게 접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 가족, 아니 내 한 몸 걱정하기도 바쁜데 엄청난 정보의 소식 속에 살다 보니 정보의 유입에 대해 무뎌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스트레스 해소라는 명목하에 타인의 단편적인 정보 한조각으로 그에 대해 평가하고 내 잣대를 들이밀며 왜 내 기준대로 살지 않냐고 추궁하고 혼자서 결론 지어 버린다. 이런 상황이 당연시 되는 요즘 템플스테이는 '나 자신'에 조금더 집중하는 시간이었다. 카톡은 일부러 읽지 않았고 인스타그램도 넷플릭스도 하지 않았다. 핸드폰은 기껏해야 해인사 장경판전 역사에 대해 다시 한번 검색하고, 홍류동 계곡 가는 길을 찾는 정도에만 사용했다. 처음엔 지루했다. 나 또한 잠깐의 틈만 있으면 인스타그램을 이용하여 남들의 일상을 탐닉했고, 손목이 아플 정도로 핸드폰을 장시간 들고 넷플릭스에 있는 미드들을 감상했었다. 그 틈을 어떻게 메울까. 방탄소년단(❤︎.❤︎) 뷔의 추천 도서인 <말의 내공>이라는 책으로 시작했다. 고요했다. 오랜만에 오롯이 책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음악을 듣지 않고 책을 읽으니 텍스트만 읽어 내려 갔던 그전의 독서와는 다르게 한번 만에 문장 전체를 쭉쭉 받아 들일 수 있었다. 초딩 시절 <해리포터> 이후로 이 얼마나 오랜만인가. 마음이 가는 구절이 있으면 책을 잠시 덮고 곱씹었다. 그러다 잠에 빠질 때도 있었다. 그 모든 중심엔 '내'가 있었다. '만약 나라면'이라는 질문을 얼마나 수없이 스스로에게 물어 봤던가. 나에게 템플스테이는 식상하지만 '나'를 찾는 시간, 그 자체였다.
부모님의 말씀대로 굳이 해인사까지 갈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미리 말했듯 팔만대장경 때문에 꼭 가고 싶었고, 그간 엄청난 외세의 침략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500년이라는 어마어마한 시간 동안 팔만대장경이 보존이 잘 되어 있듯이 해인사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그 여정만 각오할 수 있다면 해인사를 추천하고 싶다.